말리 전쟁

말리 전쟁 또는 말리 내전은 2012년 1월부터 말리 북부 및 남부 일대에서 시작된 전쟁을 일컫는다. 투아레그 반란이 2012년 1월 16일 시작되었고, 북부 말리의 아자와드라 일컫는 지역에서 자치의 확대 또는 독립을 요구하는 세력들이 이에 가담했다. 아자와드 민족해방운동이 2012년 4월 아자와드 전체를 장악했다.

말리 전쟁
아랍의 겨울, 마그레브 반란 (2002년~현재), 대 IS 군사 개입의 일부

2020년 말리 분쟁 진행도. 초록색으로 묶여진 부분은 아와자드 민족해방운동전선이 장악한 지역.
날짜2012년 1월 16일 ~ 현재
장소
결과

진행 중

교전국

말리의 기 말리
프랑스의 기 프랑스 (2013-2022)
영국의 기 영국 (2018-)
차드의 기 차드 (2013-)[16]
에스토니아의 기 에스토니아 (2018-)




러시아 러시아 (2022년부터)


말리 내부 무장단체
말리 CM-FPR

GAITA
MPSA
MAA 권력층 (2014-)
FLNA (-2014)[44][45]
APF

MDP

아자와드 MNLA[1]
아자와드 APC
MAA (2013-2014)
APM
ACJ

HCUA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보코 하람[11] (-2015)
마키나 해방전선[12]
알무라비툰
안사르 디네 (-2017)
AQIM
MOJWA[13]
(-2013)[14]
JNIM (-2017)
안사르 울 이슬람 (-2015)
지원국
카타르 카타르[15]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ISIL (2015-)

지휘관

말리 디온쿤다 트라오레
말리 아마두 사노고
말리 아마두 투레
말리 이브라임 케이타
말리 수메이루 마이가
말리 티에만 콜리바리
말리 디디에르 다코
말리 엘 하드 악 가무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장이브 레 드리앙
프랑스 에두아르 지라드
프랑스 피에르 드 빌리에
프랑스 베르나르 바레라
차드 이드리스 데비
차드 우마르 비키모
나이지리아 압둘카디르 셰후


말리 지브릴 디알로
말리 아마두 디알로 †
말리 이브라임 딕코
파하드 마흐무드
아흐메트 시디 모하메트


유엔 베르트 쾬데르스
유엔 몽지 함디
유엔 장폴 데코닝크
유엔 마하마트 안나디프
유엔 코엔 다비스데
유엔 장 카주라

유럽 연합 페테르 데보젤라에

아자와드 마호마드 아그 아갈리
아자와드 빌랄 아그 아체리프
아자와드 모하메트 아그 나잠
아자와드 하산 아그 파가가
시디 울드 시다트
후세인 울드 굴람
무사 아차라투마네
아살라트 아그 하비
모하메트 아그 인탈라
알가바세 아그 인탈라
체이크 아그 아우사

아차프기 악 보하다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이야드 아그 갈리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나빌 아부 알카마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자멜 오카차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아부 예히야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아마두 쿠파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아부 제이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모크타르 벨모크타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압델말렉 드루크델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빌랄 히참
병력

말리 6,000–7,000[47]
(전쟁 이전: ~12,150)[48]
프랑스 3,000[49]


AFISMA

총합: 7,197명 이하


총합: 48,061명


총합: 546명


2,000 (FLNA)[44]
500-1,000

300
아자와드 3,000[58][59]

1,200–3,000[60][61]

  • 보코 하람: 100[11]
  • 안사르 디네: 300[59]
피해 규모

말리 164명 이상 사망[62]
400명 포로[63]
전체:
1,000–1,500명 이상 사상 (2012.4)[58]


말리 말리 (2013.1)

차드 차드

프랑스 16명 부상[71]
토고 토고

  • 2명 사망[72]
  • 다수 부상

부르키나파소 부르키나파소

  • 1명 사망
  • 1명 부상[73]

니제르 28명 사망[74]
나이지리아 4명 사망[75][76]
세네갈 3명 사망[77][78]
라이베리아 1명 사망[79]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

중화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 1명 사망[82]
  • 4명 부상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독일 독일

아자와드 6–65명 사망
(말리군과 분쟁)[85][86][87]


26–123명 사망
(이슬람주의자들과 충돌)[88][89][90][91]


60명 포로[89][91]

17–19명 사망(2013)

115명 사망
(투아레그와 충돌)[88][89][90][91]


625명 사망
(프랑스 개입)
난민
~144,000명의 해외 난민[16]
~230,000명의 국내 난민[16]
전체: ≈374,000[46]

2012년 3월 22일, 대통령 아마두 투마니 투레가 위기 대처를 제대로 못함에 따라 쿠데타로 실각했다. 2013년 대선이 치러지기 몇 달 전 발생한 사건이었다.[92] 민주주의와 국가 회복위원회라 주장하는 병사들이 말리를 장악해 말리의 헌법을 정지시켰다.[93] 쿠데타로 인한 불안정의 결과로 말리의 3개 대도시인 키달, 가오, 팀북투가 반군에 의해 함락되었다.[94][95] 2012년 4월 5일 두엔트자를 점령한 이후 아자와드 민족해방운동은 목표를 달성해 공세를 취소하겠다고 밝혔고, 4월 6일 말리로부터 아자와드의 독립을 선포했다.[96]

아자와드 민족해방운동은 안사르 디네와 같은 이슬람 원리주의 집단의 지지를 받았다. 아자와드에서 말리군이 축출된 이후 안사르 디네와 소수의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가 엄격한 샤리아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아자와드 민족해방운동과 이슬람 무장단체는 새로운 국가에서 상충하는 목표를 가짐에 따라 충돌을 시작했다.[97] 결국 아자와드 민족해방운동은 안사르 디네와 서아프리카 지하드 통일운동, 알카에다 이슬람 마그레브 지부의 분파 등 다른 이슬람주의 단체들과 전투를 벌였다. 2012년 7월 17일 아자와드 민족해방운동은 대부분의 북부 도시들을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빼앗겼다.[98]

말리 정부는 북부를 장악하기 위해 외국의 군사적 도움을 요청했다. 2013년 1월 11일 프랑스군이 이슬람주의자들을 상대로 작전을 시작했다.[60] 아프리카 연합에서 온 다른 군대들도 그 이후 파병되었다. 2월 8일 이슬람주의자들이 점령한 영토는 말리군이 수복했고, 국제동맹군의 도움이 이에 큰 기여를 했다. 투아레그 반군도 이슬람주의자들과의 전투를 이어갔지만 아자와드 민족해방운동은 말리군에 공격을 수행하여 비난을 받았다.[99]

정부와 투아레그 반군 사이의 평화협정이 2013년 6월 18일 체결되었지만,[7] 2013년 9월 26일 반군은 평화협정을 끝내고 정부가 휴전에 대한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했다.[100] 프랑스군이 철수를 예정 중이지만 전투는 이어지고 있다.[101] 알제리알제에서 2015년 2월 19일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지만 간헐적인 테러 공격이 여전히 발생 중이다.[102]

2015년 4월 15일 수도에서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두가 계속되고 있다.[103][104]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외부 링크 편집